지난 11월 5일, 종학당과 함께 논산 11경으로 선정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원장 정재근, 이하 한유진)의 가을, 아침부터 곱게 옷차림한 분들이 분주하게 모여들었다. 소나무 사이사이 붉은 단풍과 파란 하늘을 담은 잔잔한 가곡저수지를 무대로, 잔디광장 위에 흥겨운 잔치가 시작되었다. 무대에 쓴 ‘당신의 삶이 역사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는 글은 이 행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직감케 했다. 한유진의 제2회 ‘기증기탁자의 날’, 소중히 간직해 온 선대의 유품을 한유진에 맡겨주신 분들을 모시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잔칫날은 행사진행자의 마음을 안심이라도 시키려는 듯, 일기예보와는 달리 유난히 따뜻하고 쾌청했다.
선조들이 남긴 유물을 보존하고 뜻을 계승하는 선비들의 잔치
행사는 유물 기증‧기탁자와 가족, 충남향교 관계자 등 14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여에 걸쳐, 1부 시상식과 2부 축하공연, 그리고 오찬과 시설관람으로 이어졌다.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 연희패(사단법인 민족음악원, 대표 예인 이광수)의 길놀음이 흥을 돋우웠다. 흰 바지저고리, 검정색 상의에 빨간, 노란, 파란색 띠를 두른 잽이들이 사물을 두드리며 잔디광장을 유유히 지나 무대에 오르는 동안 주요 내외빈이 자리에 들었다. 국민의례와 함께 1부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순서는 이상균 연구진흥실장님이 기관소개와 조사수집 경과보고가 있었다. 두 번째 순서는 단아한 한복차림의 정재근 원장님이 무대에 올라 2024년 기증‧기탁 해 주신 스물여덟 분 중 행사에 참석하신 열일곱 분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패와 꽃다발, 기념품을 전달하고 기념촬영 후, 행사에 참석하신 분들에게 환영의 인사를 전했다. 아울러 이번 행사 주관부서로서 국학자료를 조사·수집·보존·관리·아카이브구축과 기증·기탁 활성화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충청국학진흥부 장을연부장을 비롯한 부서원들을 소개하셨고, 부서원은 다함께 공수로 인사드리고 격려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 김영관 논산시 부시장님은 축사를 통해 “오늘 행사의 주인공인 기증·기탁자 여러분들께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기증·기탁은 역사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이며, 이 생명은 미래 후손들에게까지 쭉 이어질 것이고, 논산시도 이러한 한유진의 노력에 함께 하겠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경주김씨 재신공파 16대 종손으로서 250년간 집안에서 보관되어 오던 국학자료를 한유진에 기탁하신 김대식 안양전통문화예술원 원장님이 기증·기탁자를 대표하여 인사말씀을 해주셨다. 김대식 원장님은 “유교문화의 자료를 정리해 주신 한유진에 대해 법고창신(法古創新)의 표본이라 생각된다. 천도(天道)의 지상(之常)과 인의예지(仁義禮智)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 유교문화이다. 예(禮)와 의(義)가 망가지고 있는 요즘 선현의 지혜가 담긴 국학자료를 연구하여 후학들에게 우리의 훌륭한 유교문화를 전수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이에 동참하기 위해 기탁을 결심했다. 후학들에게 촛불이 될 수 있는 유교문화진흥원이 되길 바란다”고 하였다. 2부는 사물놀이 창시자이자 비나리의 명인 이광수 선생과 그 제자들이의 축하공연으로 ‘비나리’와 ‘사물판굿’이 무르익은 가을 속 행사장의 흥취를 더 해 주었다. 이광수 명인은 ‘비나리’로 참석자들의 일년 고액(苦厄)을 풀어 주시고, 만사대길과 소원성취를 발원해 주었다. 좌우에 소나무 숲이 병풍처럼 둘러진 한유진의 푸른 잔디 위에서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오찬을 즐긴 참석자들은 본관 건물로 이동하여 국학자료가 정리·보관되어 있는 수장시설과 충남지역 향교의 협조를 받아 수집한 전례자료를 통해 900년 동안 지역사회의 교육과 유교 이념 실천의 중심 역할을 해 온 향교의 역사와 정신을 재조명한 <충남향교전>를 관람하면서 자부심을 느끼고 돌아갔으리라. 요즘, 자식을 뒷받침해주는 부모의 능력을 두고 수저계급을 운운하는데, 조상의 삶과 지혜가 담긴 국학자료를 물려받은 후손들은 정신문화계의 진정한 ‘금수저’가 아닐까 한다. 아울러 조상으로 물러받은 소중한 국학자료의 보존과 미래전승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기증·기탁자분들은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베푸는 이 시대의 진정한 선비라 하겠다.
기증·기탁으로 이어지는 국학자료 수집성과와 한유진의 노력
2022년 10월 개원한 한유진은 충청유교자원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유교문화 재창조 거점을 육성하고, 충청권 4개 광역시도 국학진흥 거점을 육성하고자 설립되었다. 국학자료의 조사, 수집, 보존, 연구, 활용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국학연구진흥기관이다. 이를 위해 수장고, 유물정리실, 보존처리실, 촬영실, 훈증소독실 등 국학자료 관리시설과 국학자료의 가치 더욱 빛나게 해 줄 수 있는 전시실도 갖추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헌관리, 보존처리, 아카이브 구축 등 각 분야 전문가를 갖추고 있다. 한유진은 민간기록문화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기증·기탁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전승되어온 국학자료는 영구적으로 보호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기증·기탁으로 안전하게 보존·관리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시·홍보·책자 발간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널리 알리고, 학술연구와 세미나, 국역 등을 통해 문중과 선현을 선양하는 기회도 마련될 수 있다. 개원을 전후하여 2024년 현재까지 4만8천여 점의 국학자료를 기증·기탁 받았다. 지역별로 수집 수량을 살펴보면 충남이 34,620점으로 72.1%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전 9,891점으로 20.6%이다. 뒤이어 경기, 충북, 세종, 서울의 순이며, 한국사를 연구하며 ‘우물 밖의 개구리The Frog Outside the Well라는 교육 컨텐츠 유튜버 활동를 함께하고 있는 미국의 마트 피터슨 교수께서 평생 수집한 유물도 기증해 주셨다. 국학자료 수집활동을 통해 국가지정문화재(보물) ‘이색 초상-누산영당본’과 ‘윤증 초상 일괄’ 7점, 국가민속문화재 ‘윤증가의 유품’ 54점, 도 지정문화재 ‘조익선생일괄유물’ 23점을 보유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매년 수집된 자료의 가치를 발굴하여 문화재지정신청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유진은 기증·기탁 국학자료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연구, 활용하여 그 가치를 알리고, 미래세대에 온전히 전해질 수 있도록, 과거와 미래를 잇는 다리가 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을 소중히 기록하고 연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기증·기탁자분들의 삶과 한유진과의 만남도 소중한 역사이기에 더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도록 최선을 다 할 것이다.
- 한국유교문화진흥원 충청국학진흥부 송현정 <저작권자 ⓒ 얼쑤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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